1. 영화 이야기
‘단 돈’ 5,000만 원으로 제작된 영화 ‘파수꾼’(감독 윤성현·2011년)은 인간 관계의 문제를 다룬 수작으로 지금도 평가받고 있습니다. ‘파수꾼’을 억지로 분류하자면 고등학생들을 주인공으로 한 성장영화나 학원영화로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여느 학원물, 성장영화와 가는 길에 있어 확연히 차이가 납니다. 가정의 문제, 학교의 무관심 등이 작품의 배경에 깔려 있지만, 이러한 문제를 전면에 드러내지 않습니다. 오로지 주인공 세 명의 관계에 집중하며 이야기를 진행합니다.
영화는 ‘가해자의 죽음’에서 시작됩니다. '기태(이제훈)가 죽었다. 이른바 학교 최고이었고, 아이들을 괴롭히면 괴롭혔지 괴롭힘을 당하는 아이가 아니다. 그런데 그가 자살을 했다.' 아이의 삶에 무관심하던 기태의 아버지(조성하)는 아이가 죽은 다음에야 자신의 아이의 삶에 관심을 갖기 시작합니다. 기태가 남긴 사진 속 친구들, 희준(박정민)과 동윤(서준영)을 찾아 아들의 삶, 아들의 죽음의 이야기를 듣고자 합니다.
영화는 세 친구의 과거와 현재를 오가며, 기태가 죽음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을 재조합합니다. 처음에 세 친구는 무척이나 친했습니다. 폐쇄된 기차역에서 야구를 하고, 서로의 사랑도 고민도 공유합니다. 우정을 지키기 위해 자신에게 찾아온 사랑도 포기합니다. 그러나 관계 맺기에 미숙한 아이들에게 선의도 오해가 되고, 오해는 또 오해를 낳습니다. 어머니가 없는 기태에게 이 사실은 열등감이며, 이에 대한 친구들의 걱정도 비아냥으로 들립니다. 한 번 시작된 오해는 폭력으로 진화합니다.
물리적 폭력과 무시, 독설과 왕따, 집단 폭행이 서로에게 가해지고, 쌓이고 쌓인 앙금은 서로에게 거대한 벽을 만들고 맙니다. 세 명의 친구 중 두 명이 이런 지경에 이르자 그나마 남아 있는 관계도 온전하지 않게 됩니다. 기태와 희준의 갈등은 기태와 동윤의 갈등으로 번지고, 세 친구의 관계는 돌이킬 수 없는 지경에 이릅니다. 겉보기에 ‘가해자’였던 기태가 마냥 가해자인 것도 아닙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가해자와 피해자의 구별은 무의미할 뿐입니다.
2. 감독에 대하여
‘파수꾼’으로 장편 데뷔한 윤성현 감독은 특별한 효과 없이 등장인물 간의 대사와 감정처리 만으로 세 친구의 관계 변화를 섬세하게 표현해냅니다. 시나리오와. 감독의 연출력도 훌륭했지만, 어딘가, 미숙하고 예민한 고등학교 2학년 역할을 훌륭하게 해낸 배우들의 공도 매우 컸습니다. 영화. 개봉 당시만 해도 신인이었던 이제훈, 박정민, 등의 자연스럽고 섬세한 연기는 관객들의 몰입을 이끌어 내며 영화계의 주목도 이끌어 냈습니다. 신성의 탄생이었던 셈입니다. ‘파수꾼’의 가장 큰 장점은 이러한 연출력과 배우들의 열연을 바탕으로 실제 고등학생들의 삶을 옆에서 지켜보는 듯 한 자연스러움을 입혀냈다는 점입니다. 극. 중 아이들의 우정, 갈등을, 보며 공감하도록 하는 힘을 만들어 낸 것입니다. 관계 맺기의 미숙함은 영화 속 고등학교 2학년 학생들에게만 국한된 이야기이지 않습니다. 우정, 사랑 혹은 가족, 동료라는 이름으로 가까운 사람들에게 나도 모르게 주는 상처들. 상대방의 입장을 전혀 고려하지 않고 뱉어내는 독설들. 서로를 지켜주는 파수꾼이 되기보다 가해자가 돼 버리는 상황들. 이러한 경험이 누구나 있기에 이 작은 영화가 적지 않은 관객들의 공감을 이끌어 냈습니다.
3. 생각해봐야 할 것
'바위나 모래나 물에 가라앉는 것은 마찬가지다.'
영화 파수꾼은 개봉됐던 그 해에 열린 48회 대종상 영화제, 32회 청룡영화상 신인남우상, 신인감독상 등 많은 수상 내역을 갖고 있습니다. 또한 지금은 대스타가 된 이제훈, 박정민의 앳된 모습을 볼 수 있어 팬들 사이에 꼭 봐야 할 영화로 손꼽히고 있습니다.
언어의 힘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강력합니다. 말 한마디가 긍정의 에너지가 되고, 한 사람의 인생을 변화시키기도 하며, 하나의 조직을 움직이는 힘으로 작용하기도 합니다. 반대로 말로 인해 받은 상처는 쉽게 지워지지도 사라지지도 않으며, 의도치 않게 누군가의 인생을, 한 조직의 존립을 망쳐버릴 수도 있습니다. 사람들 사이의 관계에서 말의 중요성이야 더 강조할 필요가 없을 것입니다.
영화 ‘파수꾼’의 주인공들은 이 지독하고, 슬픈 파국을 경험하고 조금은 성장하지 않았을까요. 단순히 지식이 많고 적음이 성공의 지름길이기보다 공감과 이해의 능력이 그 무엇보다 중요해진 이 시대에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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