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사람이 살고 있었네.'
“사람이 살고 있었네.” 엄혹했던 1989년, 북한을 방문하고 돌아온 소설가 황석영이 남긴 일성(一聲)이었습니다. 남과 북의 정상이 판문점에서 만나고, 북한과 미국의 최고 지도자들이 한반도의 평화와 완전한 비핵화, 그리고 서로의 체제를 인정하는 회담을 하는 시대에 저건 무슨 당연한 소리냐고 되물을지 모르겠습니다. 사람이 살고 있다니. 그러나 그 시대엔 그랬습니다. 누구도 당당히 저기도 사람이 살고 있는 곳이라고 말하지 못했습니다. 비록 구속받고 탄압받았지만 황석영 작가의 저 한 마디가 대한민국 사회에 던진 충격은 큰 것이었습니다.
6.25 전쟁 이후, 특히 군사정권의 독재가 자행되던 시기 대한민국은 병영 사회였습니다. 사회가 통째로 조직된 군대와 같았습니다. 특히 학교라는 공간은 병영 사회를 살아가는데 적합한 인간을 만들어내는 곳이었습니다. 반공(反共)이 국시(國是)였던 시기, 학교 건물마다 멸공(滅共), 승공(勝共) 같은 문구가 붙어 있었습니다. 군부가 정권을 이어가고, 기득권 세력이 영향력을 계속해서 발휘하기에 북한에 대한 공포와 적개심만큼 좋은 재료를 찾기 어려웠을 것입니다. 그러한 그들에게 북한은 사람이 사는 곳이 아니어야 했습니다. 학교에서 배운 북한은 지옥이었고, 악마가 지배하는 사회였습니다.
당시 단체 관람을 시키던 반공 만화 ‘똘이장군’은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1980년대 최고 인기 만화 중 하나였던 ‘똘이장군’에서 북한군은 늑대였고, 북한의 최고 지도자는 머리에 뿔이 달린 돼지로 묘사됐습니다. 대중문화를 이용해 북한에 대한 이미지 조작이 얼마나 노골적으로 편향되게 자행됐는지 보여주고 있습니다. 학교에서 반공 그림 그리기 대회를 할 때면 북한 사람들 머리엔 꼭 뿔이 나 있는 등 어떤 방식으로든 정상적이지 않았습니다. 우리들의 머릿속에 북한은 “공산당이 싫다”라고 당당히 외치는 어린이를 잔인하게 죽이는 그런 존재였습니다. 이러한 한국 사회에 던진 메시지, 거기에도 사람이 살고 있다는 말의 무게는 컸습니다.
2. 북한과의 관계를 다룬 영화
1999년 한국 영화의 부흥을 이끌었던 영화 ‘쉬리’(감독 강제규)와 이듬해 개봉해 선풍적인 인기를 끈 ‘공동경비구역 JSA’(감독 박찬욱)는 북한 또는 북한 사람이 상업영화에서 훌륭한 소재가 될 수 있음을 증명했습니다. 북한 사람들 머리에 뿔이 나 있을 거라는 상상을 했던 시대에서 북한에 대한 한국인들의 인식이 크게 달라졌음을 극적으로 보여주고 있기도 했습니다. 특히 ‘공동경비구역 JSA’는 휴전선 넘어 북쪽에도 사람이 살고 있음을 역설하는 영화였습니다. 영화는 신비감과 낯섦이 공존하는 판문점 인근, 남북한의 공동경비구역을 지키는 군인들 간의 비밀스러운 교류와 우정, 비극적인 결말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북한을 소재로 한 영화는 ‘공동경비구역 JSA’를 기점으로 그 방향이 획기적으로 바뀌었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이 영화에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부분은 비극적인 결말입니다. 차근차근 우정을 쌓아가던 영화 속 주인공들은 왜 파국을 맞아야만 했을까요. 영화의 주인공 네 명과 결국 이들을 비극 속으로 몰아넣은 남과 북의 군인들은 아마도 1953년 전쟁이 멈춘 이후 누적돼 온 양국 사이의 불신과 편견의 벽을 넘지 못했을 것입니다.
3. 교육이 해야 할 일
우리의 머릿속을 장악하고 있는 교육과 이미지 조작의 힘은 생각보다 강력합니다. 두 나라의 기득권 세력이 체제 유지를 위해 필사적으로 만들어 온 서로에 대한 증오와 적대감이 어떤 무시무시한 파국을 맞을 수 있는지, 그 힘이 얼마나 무서운지 영화는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제 통일 교육의 패러다임이 바뀌어야 할 때입니다. 이미 많이 바뀌었습니다. 그래도 아직 부족합니다. 이제 단순히 북한에도 사람이 살고 있다 정도의 교육으로는 안 됩니다. 지난 65년간, 같은 언어를 쓰는 두 나라 사이에 만들어진 편견과 각종 인식의 차이가 너무도 크기 때문입니다. 그 간격을 메우는 일, 결국 교육이 할 일입니다.
크고 작은 갈등이 있을 때마다 ‘북한이 그렇지 뭐’, ‘역시나 못 믿을 놈들’ 이라고 자연스럽게 말하게 만드는 그 불신의 벽을 무너뜨려야 합니다. 눈에 보이는 휴전선보다 더 무서운 이 벽을 없애지 않는 한, 남북 관계에서 낙관(樂觀)은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좋은 형과 동생으로 남을 수 있었던 영화 ‘공동경비구역 JSA’ 속 주인공들이 결코 그럴 수 없었던 것처럼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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