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나문방구 장르 : 드라마, 코미디 개봉 : 2013.05.16. 감독 : 정익환 출연 : 최강희(강미나), 봉태규(최강호) |
1. 우리의 추억의 장소
어릴 때 다녔던 초등학교 정문 바로 앞에는 문방구가 마주 보고 나란히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반 아이들은 ‘성향’에 따라 선호하는 문방구가 달랐습니다. A문방구 주인아줌마가 친절해서 좋다는 아이들도 있었고, B문방구가 더 깔끔하고 정리가 잘 돼 있어 그곳만 이용한다는 이야기도 있었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학교 앞 문방구는 마법의 공간이었습니다. 그 좁디좁은 곳에 없는 것이 없었으니 말입니다. 각종 먹거리를 비롯해서, 스케치북, 크레파스, 색종이, 리코더 같은 수업 시간 준비물, 전과, 문제집 등 참고서에 이르기까지 필요한 모든 것이 그곳에 있었습니다. 참새가 방앗간을 그냥 지나칠 리 없듯, 아이들도 문방구를 그냥 지나칠 수 없습니다. 등굣길엔 준비물 준비를 위해, 하굣길엔 군것질을 위해, 혹은 그냥 한 번 들르는 곳이 문방구였습니다. 하지만 아이들의 사랑을 독차지하던 문방구도 이제 대형마트와 팬시점에 밀려 서서히 사라지고 있습니다.
2. 영화 미나문방구 이야기
영화 ‘미나문방구’(감독 정익환, 2013)는 문방구라는 공간과 그곳에서의 추억들을 ‘추억하는’ 영화입니다. 다른 영화와 달리 그 시점이 현재라는 것이 차이라면 차이입니다. ‘미나문방구’는 현재라는 시점 속에 과거 속 문방구를 재현해 놓았습니다.
문방구 집 딸이라 ‘방구’로 놀림받던 미나는 공무원이 됐습니다. 그런데 하는 일마다 꼬이기 시작합니다. 이제 사양길에 접어든 문방구를 정리하지 못하고 빚만 늘어가는 와중에 병원에 입원까지 한 아버지에 대한 빚 독촉 전화가 본인에게 걸려옵니다. 더군다나 사귀던 남자 친구는 자기보다 훨씬 어린 여자와 결혼한다며 청첩장을 건넵니다. 연달아 사고를 친 미나는 두 달 정직을 당하고 정직기간 동안 문방구를 정리하기 위해 고향에 돌아옵니다. 장사도 안 되고, 옛날 물건만 가득 쌓인 문방구의 정리가 쉬울 리 없습니다. 문방구 자리에 대형 팬시점을 하겠다며 찾아온 사람들은 문방구가 어느 정도 장사가 돼야 인수를 하겠다는 제안을 합니다. 문방구를 팔기 위해 문방구를 활성화시켜야 하는 아이러니한 상황에 봉착한 미나. 미나는 문방구를 정리할 수 있을까요.
문방구라는 제목이 연상시키듯 ‘미나문방구’는 추억에 관한 영화입니다. 문방구 매출을 올리기 위해 미나는 역설적으로 옛날 물건들을 최신식 마케팅 기법을 동원해 팔기 시작합니다. 문방구 앞 옛날 게임기(스트리트파이터), 뽑기를 비롯해서 불량식품이라 불렸던 옛날 먹을거리, 팽이 같은 옛날 놀거리까지 말입니다.
‘미나문방구’는 추억을 떠올리며 미소 짓게 만드는 영화지만, 너무 착한 영화이기도 합니다. 추억과 웃음, 감동을 적절히 버무리려 노력했지만, 영화 전체적으로 심심한 느낌을 지울 수 없습니다. 전개되는 사건들 또한 예측 가능한 부분을 크게 벗어나지 못한다는 점에서도 영화적으로만 본다면 아쉬움이 클 수 있습니다.
3. 아이들도 사랑방이 필요해
그러나 영화는 문방구라는 공간을 단지 추억만을 위한 장소로 활용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주목할 수 있습니다. 영화의 주시점을 과거가 아닌 현재로 설정한 것도 이런 이유 때문입니다. 문방구 딸이라는 이유로 따돌림을 당하며 자신보다 문방구를 더 소중히 여긴 아버지를 원망하던 미나와 다방 집 아들로 학교의 대표적인 왕따였다가 현재는 모교의 교사가 된 강호는 문방구라는 공간을 통해 과거를 치유하고, 진실을 알게 되며, 아이들과 소통하게 됩니다.
아이들도 마찬가지입니다. 겉으로 보기엔 발랄하고 귀엽기만 하지만 학원에, 공부에 온갖 고민을 안고 살아가는 아이들은 미나 문방구에서 어울려 놀며, 혹은 미나에게 고민을 털어놓으며 각자가 가진 상처를 치유받습니다..
아이들에게도 사랑방이 필요합니다. 과거엔 학교 앞 문방구가, 동네 뒷동산이 아이들이 어우러져 놀 수 있는 사랑방 역할을 했습니다. 요즘 아이들에겐 어우러져 소통하고 놀 수 있는 사랑방이 없습니다. 아이들이 스트레스를 풀 수 있는 곳은 온라인 게임 속 가상의 공간뿐일지도 모릅니다. ‘미나문방구’가 영화 속 요즘 아이들에게 사랑받는 이유는 간단합니다. 아이들이 자신의 이야기를 할 수 있고, 다른 애들과 어울릴 수 있고, 갈등을 해결할 수 있는 자리를 ‘문방구’로 상징되는 공간이 마련해 주기 때문입니다.
착하디 착한 영화 ‘미나문방구’는 현실적인 부분이 결여돼 있다는 점에서 비판받을 수 있을지 모릅니다. 하지만 아이들에게, 억지로 보내는 해병대 캠프 같은 것 말고, 진심으로 소통하고 어우러질 수 있는 공간을 계속해서 만들어 주기 위한 노력은 사실 문방구 주인이 아닌 우리 사회가 해야 할 일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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