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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TV 리뷰

12년 간 배우들과 함께 성장한 영화 ‘보이후드’

by 한국의 잡학사전 2022. 9.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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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후드 Boyhood
장르 : 드라마
개봉일 : 2014 .10.23
감독 : 리처드 링클레이터
주연 : 엘라 콜트레인(메이슨), 에단 호크(아빠), 패트리샤 아퀘트(엄마)

1. 성장 드라마

사람들은 기본적으로 기---결이 분명한 이야기를 좋아합니다. 학교에서 배웠던 것처럼 발단, 전개, 위기, 절정, 결말의 형식으로 진행되는 전형적인 서사구조에 익숙해져 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이야기 구조는 비극적인 탄생부터 영웅의 자리에 오르기까지 온갖 고초를 이겨내고 악(혹은 적)과 맞서 싸운다는 내용의 고대 영웅 서사로부터 기원했기에 수천 년의 역사를 지녔다고 해도 딱히 틀린 말은 아닐 것입니다.

하지만, 가만히 생각해보면 우리 인생을 기---결의 간단한 구조로 요약해 내는 게 가능하기는 한 일일까요? ‘춘향전이나 신데렐라이야기처럼 왕자님과 결혼만 하면 행복한 결말을 맺은 걸까요? 그렇다면 반대로 모두가 죽음에 이르러야만 끝나는 우리 인생은 모두 비극이라고 정의돼야 맞는 걸까요?

비포 선 라이즈’, ‘비포 선 셋등 이른바 비포시리즈로 우리에게도 유명한 리처드 링클레이터 감독은 보이후드라는 경이로운 영화 속 실험을 통해 영원한 시간 속에서 순간과 순간이 모아져 계속되는 인생에 대해 자신만의 대답을 내놓고 있습니다.

2. 영화 이야기

아버지의 이름을 물려받은 여섯 살(우리 나이로는 8) 메이슨과 그의 누나 사만다는, 아버지 없이 삽니다. 20대 초반 어린 나이에 뜨거운 사랑에 불타 아이들을 낳고 결혼했지만, 메이슨 시니어와 올리비아는 결국 이혼했습니다. 노래 만들어 부르는 걸 즐기고 한량 기질이 다분한 메이슨 시니어는 유쾌하며 남을 이해하는 능력이 뛰어나지만 생활력이 부족합니다. 이에 반해 올리비아는 아이들 둘을 키우며 공부까지 병행해 교수가 될 만큼 생활력이 강합니다. 그러나 젠틀하게 보였던 교수든, 신뢰를 중시하며 이라크 파병 경험이 있는 듬직하게 생긴 연하의 남자든, 올리비아가 새롭게 만나는 남자마다 뭔가 문제가 있습니다. 올리비아의 문제 때문에 아이들은 정들어 살던 곳을 떠나 이곳저곳 낯선 도시를 전전하며 살게 됩니다. 메이슨과 사만다는 그곳에서 소소한 일상을 살고, 새롭게 사람을 만나고, 연애하고, 갈등하며, 누구나 하는 고민들을 겪고 극복하면서 성장합니다.

여기까지 들으면 이 영화는 굉장히 단조로운 성장드라마로 보입니다. 하지만 6살 메이슨 아역과 중학생 사춘기의 메이슨, 고등학생이 되어서 사랑을 하고 새로운 꿈을 키우는 메이슨, 어엿한 성인으로 성장해 대학생이 된 메이슨이 같은 배우라면 어떨까요? 그렇습니다. ‘보이후드는 무려 12년간 제작된 영화입니다. 메이슨 역을 맡은 엘라 콜트레인은 6살 꼬마에서 대학생으로 성장했고, 메이슨 시니어로 분한 에단 호크는 딱 12년의 세월만큼 얼굴에 주름이 늘어났습니다.

주인공 아이들은 2000년대 초반부터 2010년대까지 그 시대의 음악이 배경으로 깔리는 가운데 딱 그 나이에 겪을 수 있는 상황들과 고민에 맞닥뜨리며 커가고, 부시에서 오바마로 대통령이 바뀌며 정치적인 상황도 변해갔습니다. 관객들은 아이들의 변한 헤어 스타일과 얼굴 생김새로 또다시 시간이 흘렀음을 추측하며 부분 부분 진행되는 소소한 에피소드들을 지켜봅니다. 이처럼 등장인물들이 실제 성장하고, 나이 들어가는 모습을 보는 과정은 참으로 묘하며, 경이롭습니다. 분명 꾸며진 이야기임을 알면서도 그 이야기에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진정성을 부여하고 있는 것입니다. 관객들은 픽션(또는 실화)인 듯 픽션(실화) 아닌 픽션(실화) 같은 영화를 보는 기이한 체험을 하게 되는 셈입니다. 감독의 뚝심과 이 프로젝트에 참여한 배우들의 의리에 한 번 더 놀라면서 말입니다.

3. 인생이란?

감독은 보이후드를 통해 영원히 진행되는 시간 속에 순간을 살아가는 인생을 얘기합니다. 로맨틱 코미디는 사랑이 이뤄진 순간 행복한 결말이 온다고 말하지만 실제 인생이 그렇지 않음을 우리는 너무도 잘 압니다. 사랑이 이뤄진 그 이후부터가 진정한 현실입니다. 또는 대학에 진학한 순간 연애도 하고, 취업도 하며 모든 게 잘될 거라고 스스로에게, 혹은 제자와 자식들에게 최면을 걸지만, 사실 인생이란 그리 녹록치 않음도 잘 압니다. 연애든, 결혼이든, 진학이든, 취업이든 기---결의 결말이 아닌 인생이라는 기나긴 과정 속의 한 단계임을 리처드 링클레이터 감독은 보이후드를 통해 관객들에게 조용히 속삭입니다. 그만큼 인생이란, 예측할 수도, 예단할 수도 없는 그런 것이라면서 말입니다.

영화는 메이슨이 파란 하늘을 보며 누워있는 장면으로 시작해, 대자연 속에서 새로운 사랑을 만나는 메이슨의 모습으로 끝을 맺습니다. 감독은 인간이 순간을 잡는 것이 아니라(seize the moment), 그 순간이 우리에게 다가와서 우리를 붙잡는 게 아니냐고(The moment seize us) 반문합니다. 영겁의 시간과 대자연 속에서 우리는, 우리를 붙잡은 그 순간순간을 기억하며 그렇게 살아갑니다. 어쩌면 그 순리에 따라 살아가는 것, 그것이 인생인지 모릅니다. 그렇게 삶은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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