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산 감독 이준익 출연 박정민, 김고은 개봉일 2018.07.04. |
1. 끊임없는 변화를 시도하는 감독 이준익
음악 전문 케이블 채널 M.net에서 큰 인기를 끌었던 ‘고등래퍼2’ 무대가 있습니다. 얼굴도 앳된 두 청소년이 랩을 쏟아냅니다. 두 래퍼는 바코드의 빨간빛에 인생을 대입했습니다. 검은 옷을 입은 래퍼는 바코드 빛처럼 그저 반짝하고 말 인생을 비관적으로 그렸고, 흰 옷에 미소를 띤 고등학생 래퍼는 잠깐이라도 우리를 비추는 그 빛이 희망일 수 있다며 긍정을 노래했습니다. 옷 색깔만큼이나 대조되는 두 사람의 인생관과 가사는 놀랍게도, 무대 위에서 조화롭게 어우러지며 그들의 무대를 지켜보는 관객들에게 놀라움과 감동을 선사했습니다. 이제 겨우 만 18세, 고등학교 2학년 또래의 두 청소년이 쏟아낸 랩은 신선하고 기분 좋은 충격이었습니다. 그들의 랩은 시였고, 문학이었습니다.
1959년생. 한국 나이로 6060세를 훌쩍 넘긴 이준익 감독도 방년 18세 소년들과 생각이 같은 모양입니다. 대한민국 영화계에서 한 획을 긁고 있는 중년 감독의 생각이 여전히 젊다는 것을 확인하는 순간은 무척이나 유쾌한 일이었습니다.
영화 ‘변산’은 이준익 감독의 젊은 감각을 확인시켜 줬습니다. 영화의 이야기나 구성, 스타일이 젊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올드하거나 속된 말로 구리다는 평가가 맞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영화의 소재나 무엇보다 문학을 바라보는 이준익의 열린 시선은 그 누구보다 젊었습니다.
2. 영화 줄거리
‘내 고향은 폐항, 가난해서 보여줄 게 노을 밖에 없네’
주인공 학수(박정민 역)는 무명 래퍼입니다. 고향 변산, 아니 도박으로 가산을 탕진하고 어머니 장례식에도 나타나지 않은 조폭 출신 아버지와 그가 사는 땅이 싫어서 무작정 상경한 그는 래퍼로 성공하겠다는 꿈 하나로 힘든 삶을 버텨내고 있습니다. 발레 파킹, 편의점 알바를 비롯해서 안 해 본 일이 없고, 힙합 서바이벌 프로그램인 ‘쇼 미 더 머니’에는 6시즌째 개근하고 있습니다.
홍대 인근 언더그라운드 무대에서는 실력을 꽤 인정받고 있지만, 방송 무대에서는 중요한 순간마다 이른바 ‘삑사리’를 내고 탈락합니다. 이제 7번째 도전, 올해가 마지막이라는 생각으로 임한 무대에서 승승장구하지만 ‘어머니’라는 주제의 무게를 이겨내지 못하고 다시 탈락하고 맙니다. 모든 것을 내려놓은 순간 고향에서 아버지가 위독하다는 전화를 받고, 그토록 보기 싫었던 아버지를 보기 위해 고향으로 향하게 됩니다. 10년 만에 다시 찾은 고향 그곳에서, 학수는 자신을 억누르고 있는 과거로부터 성공적으로 탈출해 새로운 미래를 꿈꿀 수 있었을까요?
영화 ‘변산’에 대한 영화적인 평가는 많이 갈립니다. 앞에서 언급했던 이야기 전개와 연출은 투박하고 갈등이 해결되는 방식도 구태의연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전작 ‘라디오스타와’와 마찬가지로 사람과 지역을 바라보는 이준익 만의 시선은 한 없이 따뜻하고 사랑스럽습니다.
이준익 감독이 단순하게 젊은이들이 폼 잡는 클리셰로 힙합을 바라봤다면 영화는 망했을지 모릅니다. 하지만 이준익은 그가 사랑하는 문학의 연장선에서 힙합을 그려냅니다. 그의 전작 영화 ‘동주’를 통해 문학의 힘이 얼마나 위대한지 역설한 바 있습니다. ‘변산’ 또한 사람과 사람, 사람과 지역 간의 갈등과 화해의 중요한 수단으로 문학을 활용하고 있습니다. 두 주인공 학수와 선미(김고은 역)는 시와 소설, 그리고 힙합을 통해 서로의 오해를 풀어가고 자신들을 옭아매는 과거에서 벗어나 미래를 그려나갑니다.
어린 시절 시인을 꿈꿨던 학수는 시를 쓰던 감각으로 랩 가사를 씁니다. 그의 인생을 담습니다. 결핍을 노래합니다. 학수를 짝사랑하던 소녀 선미는 소설가가 됐습니다. 시와 폐항이 되어 버린 고향을 사랑했던 소년의 시를 읽으며, 소년의 좌절과 자신의 첫사랑 실패를 슬퍼하며 글을 썼습니다. 소설은 그녀의 삶의 자양분이 됐습니다. 사랑의 매개체 또한 시와 소설이었습니다.
문학이 경시받는 사회라고 말하는 이도 있습니다. 고전적인 의미에서만 문학을 바라본다면 그 말이 맞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다른 관점에서 바라보면 문학은 한층 더 풍성해지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이준익 감독은 그 가능성을 보고 자신의 영화에 그 가능성을 녹여냈습니다. 이준익 감독이 바라봤던 우리의 문학은 우리가 생각하지 못한 방향으로 진화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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