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오우삼 스타일
영화 ‘적벽대전’(감독 오우삼·2008년)은 나관중의 ‘삼국지연의’를 기반으로 하고 있습니다. 이미 많은 독자들이 잘 알고 있는 삼국지 속 적벽대전을 스크린 속에 완벽히 되살려냈습니다. ‘삼국지연의’와 차이라면 제갈량이 아닌 주유와 오나라가 극의 중심에 등장한다는 점 정도일 것입니다. 그럼에도 제갈량의 계책으로 화살을 얻는 장면부터 연환계, 이간계, 동남풍을 부르는 장면 등 ‘삼국지연의’ 속 적벽대전의 재미를 충실하게 살려냈습니다. 특히 한때 홍콩 누아르의 대표적인 스타일리스트였던 오우삼의 장기(특유의 슬로모션과 비둘기가 나르는 장면 등은 여전히 빠지지 않습니다.)와 수중전, 기마전, 공성전 등 고전 전쟁영화의 스펙터클이 어우러지며 충분한 재미를 선사한 영화였습니다. 그동안 특히 소설 속에서 촉나라 영웅들에 비해 주목받지 못한 오나라 장수와 모사들이 극의 중심 캐릭터로 자리 잡으며 신선한 재미를 주기도 합니다.
오우삼의 ‘적벽대전’에서도 가장 눈길이 가는 캐릭터는 역시 조조입니다. 오우삼의 조조 묘사는 그간의 전형성을 살짝 벗어나는 것 같으면서도 어찌 보면 조조를 더욱 야비한 캐릭터로 만들어 놓습니다. 권력욕은 물론 심지어 주유의 부인까지 탐하는 욕망의 화신처럼 말입니다.
2. 역사는 승자의 몫
흔히 역사는 승자의 몫이라는 말을 많이 합니다. 그런 측면에서 보면 조조는 매우 특이한 사례라고 할 수 있습니다. 진수가 쓴 역사서 ‘삼국지’보다 ‘삼국지연의’라는 역사 소설이 더 유명해지면서 소위 승자의 역사를 누리지 못한 인물이 돼 버렸으니 말입니다. 권력욕과 야비함, 잔인함까지 ‘겸비한’ 간웅으로 묘사되는 조조에 대해 최근 그를 재해석하려는 움직임이 이는 것도 이러한 이유 때문입니다. ‘삼국지연의’의 묘사와 달리 실제 역사 속 조조는 합리적이고 실리를 추구하며 규율을 중시했던 리더였다는 주장이 곳곳에서 제기되고 있는 것입니다.
역사는 승자의 몫입니다. 당연한 말이지만 이긴 자들이 기록의 권리와 권한을 갖기 때문입니다. 역사는 기록하는 자들의 몫이라는 말도 일맥상통할 것입니다. 조조와 삼국지의 사례는 이러한 측면에서 매우 흥미롭습니다. 분명 진수의 ‘삼국지’, 즉 정사는 객관적으로 기술돼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역사의 객관적 기술은 물론 승자를 돋보이게 합니다. 그런데 패배자의 시선으로 기록된 소설이 엄청난 인기를 끌면서 ‘역사는 승자의 몫’이라는 명제를 애매한 것으로 만들어버린 것입니다. 역사는 승자가 아닌 기록하는 자의 몫이기 때문입니다. 조조와 삼국지의 사례는 기록의 중요성을 더욱 강조해 주고 있는 셈입니다. ‘삼국지연의’의 허구들(거의 신적으로 묘사된 제갈량의 사례들을 포함해서)이 수많은 독자들에게 진실로 받아들여지는 현실을 직시할 필요가 있습니다. 소위 검증된 역사만 기록되며, 어린 학생들을 가르치는 교재가 되는 역사 교과서의 중요성은 굳이 두 번 말할 필요가 없습니다.
3. 기록의 의미
우리 사회에서는 여전히 역사 교과서를 자꾸 왜곡하고, 틀리게 서술하려는 세력들이 있습니다. 일본의 극우 세력과 국내 일부 정치세력이 그들입니다. 일본 제국주의 식민 사관을 받아들이고, 군부 독재를 합리화하는 것에 모자라 검증되지 않은 틀린 내용이 서술되고, 일부 표절까지 문제시되고 있습니다.
일본의 극우 세력이나 국내 일부 정치 세력이 자신들의 시각으로 기술된 교과서를 검정받고, 더욱 많은 학교가 자신들의 교과서를 채택하도록 노력하는 데는 그들이 무엇보다 ‘기록’의 중요성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역사를 기록하고 그 기록이 다수의 국민들에게 사실로 받아들여지는 순간 역사는 바뀝니다. 조조가 간신, 간웅, 악인으로 다수의 사람들에게 각인된 것처럼 친일파가 순식간에 천하에 없는 애국자로, 독립운동가가 범죄자 테러리스트로 변해 버릴 수도 있다는 얘기입니다. 기록한다는 것은 이처럼 무서운 일입니다. 더구나 교과서에 기록되는 역사의 중요성이야 더 말해서 무엇하겠습니까. 역사는 기록하는 자들의 것입니다. 그 기록은 정확하고, 올바르고, 정의로워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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