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꿈에 대한 이야기
너는 꿈이 뭐야? 너는 커서 뭐가 되고 싶어? 우리 사회는, 우리 교육은 여전히 꿈을 묻습니다. 엄밀히 말하면 어떤 ‘직업’을 갖고 싶은지 질문합니다.
한때는 대통령, 과학자 같은 뭔가 거창해 보이는 직업들이 인기였지만 요즘 학생들은 좀 더 구체적이고 현실적으로 변한 것 같습니다. 교육부와 한국직업능력개발원이 조사한 '2020년 초·중등 진로 교육 현황조사'에서 1위는 3년 연속 운동선수가 차지했습니다. 2위는 의사, 3위는 교사, 4위는 유튜버, 5위는 프로게이머 순이었습니다. 중고등학생은 교사가 1위였고, 간호사, 의사, 경찰관, 군인처럼 안정적인 직업에 대한 선호도가 높았습니다. 그만큼 우리 사회에서 젊은 세대가 안정적인 직업을 갖는다는 것이 힘들어진 모양입니다.
2. 리틀 포레스트 이야기
영화 ‘리틀 포레스트’(감독 임순례·2018년) 속 혜원(김태리)도 똑같은 고민을 하고 있는 우리네 청춘입니다. 제대로 된 가게도 없고, 오가는 버스도 몇 대 없는 시골 마을에서 자란 혜원은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서울에 있는 대학에 진학하며 고향을 떠났습니다. 대학을 졸업하고 중등 교사 임용시험을 치지만 번번이 낙방합니다. 편의점에서 파트타임으로 일하며 돈을 벌고, 한 푼이라도 아끼기 위해 유통기한이 지난 도시락과 삼각김밥, 노량진 고시촌 컵밥으로 끼니를 때우며 시험을 준비하지만 상황은 녹록하지 않습니다. 심신이 모두 지쳐갈 무렵의 어느 겨울날, 임용시험에 합격한 남자 친구와 달리 또다시 시험에서 떨어진 혜원은 주변과 모든 연락을 끊고 고향으로 돌아옵니다. 아니 잠시 내려옵니다. 너무 배가 고파서, 폐기되는 도시락과 인스턴트 음식으로 연명하는데 지쳐서, 제대로 된 밥이 먹고 싶어서라는 작은 바람이 있습니다.
사나흘 있을 생각에 내려온 고향엔 그런데, 혜원을 반겨 주는 소중한 것들이 너무 많습니다. 고향에 남아 있는 두 친구 은숙과 재하는 물론, 언제든 요리해 먹을 수 있는 신선한 채소와 재료들, 누구에게도 사기 치지 않고 거짓말하지 않는 농사일, 무엇보다 수능 보는 날 자신을 두고 어디론가 떠나버린 엄마에 대한 추억까지. 배춧잎과 된장만 풀어 만든 된장국부터 시루떡, 밤 조림, 곶감 등등 시골에서 직접 기른 신선한 재료들로 음식을 만들어 먹을수록 요리하기 좋아했던 엄마에 대한 추억이 자꾸 떠오릅니다. 그러다 보니 어느새 봄, 여름, 가을, 겨울 한 해가 지나갑니다. 시골에서 재회한 친구들과 알콩달콩 놀고, 싸우고, 농사지으며, 엄마와 함께 했던 추억을 떠올리며, 그렇게 흘러가듯 살아가다 혜원은 비로소 자신이 마주한 문제들에 대한 해답을 찾아냅니다.
소름 끼치는 사이코 패스, 암살, 테러, 약물 중독, 거친 욕설, 살인, 방화, 정치적 음모, 배신, 지구를 침공한 외계인과 맞서 싸우는 영웅들, 어마어마한 자연재해, 전 우주적 전쟁 등등 영화의 소재와 이야기는 좀 더 자극적인 것들로 진화돼 왔습니다. ‘리틀 포레스트’는 어쩌면 이러한 흐름의 정반대에 위치해 있습니다. 자극적인 소재도 없고, 긴장감, 서스펜스도 없으며 엄청난 사건이 벌어지지도 않습니다. 그렇게 혜원의 농촌에서의 삶, 1년을 지켜보다 보면 평화로움을 느낍니다. 그리고 어떻게 사는 것이 좋은 삶인지 스스로에게 조용히 되묻게 됩니다.
3. 행복의 의미
사실 질문 자체가 잘못된 것은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뭐가 될래, 꿈이 뭐냐고 묻기 전에 너의 행복을 어떻게 찾아가고 싶으냐고 묻는 게 먼저인지도 모릅니다. 사람은 어차피 자기 밥벌이를 해야 합니다. 그것은 인간의 불행한 숙명입니다. 농사를 짓든, 회사원이 되든, 정치나 사업을 하든 인간은 일해서 먹고살아야 하는 존재입니다. 하지만 어떤 ‘직업’, 무엇이 되느냐 여부가 그의 행복을 보장해 줄 수는 없습니다. 남들이 모두 다 추앙해 마지않는 자리에 앉는 이들이 행복의 최대치를 갖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그 자리가, 그 옷이 나에게 맞는 자리인지, 맞는 옷인지를 먼저 따져야 하는 게 순리입니다.
영화 속에 나오는 양파처럼 우리 삶도 이리저리 옮겨 심어지는 일의 연속입니다. 그러다 우리가 살아가기, 행복하기 딱 좋은 자리를 찾아 ‘아주 심기’를 해야 합니다. 어차피 어딘가에는 자리 잡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크든 작든 나만의 숲을 찾아야 합니다. “너 뭐가 되고 싶어”라고 폭력적으로 묻지 말고, “우린 어떻게 살면 행복할까”라고 물으며 함께 행복을 찾아보면 어떨까 생각해봅니다.
어떤 이는 어마어마한 권력을 휘둘러야 행복할지 모르겠지만, 영화 속 혜원처럼 밭에서 뽑은 최고의 신선한 재료로 나만의 요리를 만들어 먹는 일이 세상에서 가장 큰 행복인 사람도 있는 법입니다. 우리 교육이, 학교가 진학을 위한 수단이나, 특정 직업인을 만드는 곳이 아닌 아이들에게 행복한 삶을 찾아주는, 아이들이 행복하게 ‘아주 심기’를 할 수 있도록 돕는 그런 곳이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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