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독립군의 첫 승리를 그린 영화
영화 ‘봉호동 전투’(감독 원신연·2019년)의 장단점은 분명합니다. 대한민국 독립군의 첫 승리의 기록인 만큼 관객들에게 카타르시스를 선사할 수 있겠으나, 역사가 스포일러라 결과가 빤히 예상된다는 점은 분명한 단점입니다. 그래서 감독 원신연은 치열하게 싸운 봉오동 전투가 아니라 봉오동 전투를 승리로 이끌기 위해 헌신한 사람들과 전투가 벌어지는 과정에 집중하는 전략을 선택합니다.
영화의 스토리는 단순합니다. 마적질을 하다 독립군에 합류한 황해철(유해진 역) 부대와 젊고 빠르고 헌신적이며 유능한 분대장 이장하(류준열 역) 부대가 만주에 있는 대한 독립군 토벌을 위해 파견된 일본군 월강추격대를 봉오동 죽음의 계곡으로 유인하는 과정에서 벌어지는 고군분투(孤軍奮鬪)가 영화의 핵심 내용입니다. 감독은 이러한 내러티브의 단조로움을 상쇄하기 위해 독립군 자금 운반과 이를 저지하기 위해 출동한 일본군 남양수비대, 독립군 자금 운반의 중책을 맡은 황해철 부대와 이장하 부대의 합류 등 다양한 장치들을 추가로 배치해 영화의 흥미를 더욱 증폭시켰습니다.
역사 왜곡 논란에 휩싸여 관객들의 외면을 받은 ‘나랏말싸미’의 사례에서 보듯 ‘봉오동 전투’와 같이 역사적 사실을 영화화하는 일은 위험 부담이 크게 따릅니다.(단순 비교로 나랏말싸미 관객수 95만명, 봉오동전투 관객수 478만명이 관람했습니다) 더구나 일제 강점기 독립군들에 대한 역사 기록이 부족하다는 사실은 이러한 위험성을 더욱 크게 만들어 냅니다. 감독은 그래서 독립신문 88호에 기록된 봉오동 전투에 대한 역사적 사실을 기반으로 영화의 서사를 완성했습니다. 독립신문에는 봉오동 전투의 시작을 알린 삼둔자 전투부터 후안산 전투, 고려령 전투, 봉오동 본 전투에 이르기까지 한국 독립군 역사상 최초의 대규모 전투 승리에 대한 기록이 개괄돼 있습니다. 감독은 독립신문의 기록 사이사이 빈틈을 상상력으로 잘 메꾸었습니다.
2. 민초들의 독립군 이야기
영화 ‘봉오동 전투’의 미덕은 여기에 있습니다. 감독은 봉오동 전투를 승리로 이끈 대한독립군 사령관 홍범도와 몇몇의 지휘관이 아닌 당시 독립군의 주축이었던 민초들에게 초점을 맞추었습니다. 실제 봉오동 전투에 참가한 대부분의 독립군들은 정규군 훈련을 받은 적 없는, 혹은 짧은 기간 훈련을 받은 사람들이었습니다. 물론 봉오동 전투의 사령관인 홍범도 장군도 정규 훈련을 받은 군인이 아니라 사냥꾼 출신이었습니다.
어제까지만 해도 농사를 짓거나, 물고기를 잡거나, 장사를 하던 이들이 생업을 버리고 기꺼이 독립운동에 뛰어들었습니다. 내 나라, 내 조국, 내 땅이 없는 상황에서 무슨 일을 하든 그것은 의미 없는 일에 불과하다고 생각했습니다. 황해철(류해진 역)이 내뱉었던 ‘어제 농사짓던 인물이 오늘은 독립군이 될 수 있다’는 말이 그때의 모습을 함축적으로 보여줍니다. 어쩌면 최신 무기와 정규 훈련으로 무장된 일본군 정규군이 봉오동 전투에서 참패한 것은 단순히 지형지물을 이용한 독립군의 신출귀몰한 작전에만 당한 것이 아니라 정확한 독립군의 규모조차 파악하지 않고, 전술훈련도 제대로 못 받은 비정규군인 독립군을 무시했던, 그 오만함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역사에 기록된 독립군의 첫 승리, 1920년 6월의 이야기는 이렇게 만들어진 것입니다.
3. 국난극복의 힘, 민초
우리에게는 이런 말이 있습니다. 한국인에게는 국난극복의 DNA가 새겨져 있다고 말입니다. 임진왜란이 벌어지자 왕은 백성들을 버리고 도망갔지만 민초들은 의병에 합류해 나라를 끝까지 지켰습니다. 구한말 나라가 망해가는 와중에도 의병은 일어났고, 이들은 대한 독립군의 뿌리가 됐습니다.(드라마 ‘미스터 션샤인’이 그 과정을 보여주기도 했습니다) 3.1 만세 운동의 주축도 민중이었고, 일제 강점기 시대 권력자들이 나라를 팔아먹고 떵떵거리며 사는 동안 민초들은 봉오동에서 청산리에서 대한독립 만세를 외치며 이름도, 영광도 없이 목숨 바쳐 싸웠습니다.
대한민국 민주주의에 위기가 닥쳤을 때도 늘 나라를 구한 것은 민중, 국민이었습니다. 3.15 부정선거에 맞선 그때도, 독재 정권에 맞서 싸운 부산과 마산에도, 5월의 광주에도, 1987년 6월 전국 방방곡곡에도, 국정 농단에 분노해 손과 손을 맞잡고 촛불을 들었던 광장에도 국민이 있었습니다. 1920년 봉오동 골짜기에 이름 없는 민초들로 구성된 독립군들이 있었듯, 우리 역사 속 위기의 순간엔 항상 민초들이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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