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영화 땐뽀걸즈, 진실함이 주는 매력
여고생과 댄스스포츠. 뭔가 조합이 딱 맞아떨어지는 느낌은 아니지만 이 소녀들에게 댄스스포츠(그들만의 표현으로는 ‘땐뽀’)는 빼놓을 수 없는 삶의 일부분이 돼 버렸습니다. 거제도는 조선(造船) 산업으로 잘 나가던 도시였습니다. 우리나라가 조선업 수주 세계 1위를 달릴 정도로 조선업이 호황이던 시절, 거제도에서는 지나가는 개도 만 원짜리 지폐를 물고 다닌다는 우스개 소리가 있을 정도였습니다. 그만큼 거제는 경제적으로 부유한 도시였습니다.
다큐멘터리 영화 ‘땐뽀걸즈’(감독 이승문·2017년)는 조선업 불황이 찾아온 도시 거제에서 평범한 듯 평범하지 않은 삶을 살고 있는 소녀들의 이야기입니다.
거제여자상업고등학교에 다니는 학생들의 목표는 지역 내 중공업에 취업하는 것입니다. 조선업 불황이 찾아오면서 예전에는 쉬웠던 그 목표가 부쩍 어려워졌습니다. 그런데 이 아이들 심상치 않습니다. 댄스스포츠 동아리 ‘땐뽀반’ 아이들은 내신등급 9등급은 보통이고, 취업도 취학도 모두 녹록지 않은 소녀들입니다. 하지만 땐뽀반 아이들은, 삶의 무거움을 잠시 내려놓고 댄스스포츠에 몰입하며 새로운 꿈을 꾸고 있습니다.
영화 ‘땐뽀걸즈’의 미덕은 이 부분에서 나옵니다. 만약 ‘땐뽀걸즈’가 상업영화로 만들어졌다면 스토리는 빤하게 흘러갔을 것입니다. 이런저런 사정과 개성을 가진 아이들이 만나고, 성장하고, 갈등하다 한 마음으로 단합하고 전국 대회에 나가고 감동의 무대를 선보이며 마무리가 되는 스토리였을 것입니다. 하지만 다큐멘터리 속 아이들의 삶은 그야말로 ‘현실’입니다. 전국대회에 나가서 상을 받지만 그것이 그리 중요한 일은 아닙니다. 입상을 하든 안 하든, 현실 속 삶은 계속되기 때문입니다.
‘땐뽀걸즈’는 바로 이 아이들의 삶에 방점을 찍고 있습니다. 할머니 손에서 자라 이제는 동생과 단 둘이 사는 삶을 책임져야 하는 현빈이. 낮에는 학교에 나가고 밤에는 고깃집 파트타임 일을 하며 돈을 벌어야 하지만 춤출 때가 제일 재미있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힘든 건 어쩔 수 없습니다. 더구나 한 명이라도 빠지면 연습에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는 댄스스포츠의 특성상 때로는 팀에 민폐가 되곤 합니다. 그래도 춤을 포기할 순 없습니다. 그나마 동생이 위로가 됩니다. 동생은 막노동이라도 해서 힘을 보탤 테니 하고 싶은 춤 하라고 현빈을 위로합니다.
대기업 조선소에 다니다 버스 운전을 하는 아빠와 땐뽀반 지현이의 대화, 한 때는 손님이 많아서 앉을 자리가 없을 정도였지만 이제는 장사가 안 돼서 고민 중이라는 횟집을 운영하는 아빠의 이야기, 조선업을 그만 두고 새로운 일을 찾아 서울로 떠난 시영이 아빠의 이야기 등등 빠르게 스쳐 지나가는 에피소드들 속에는 불황을 맞은 거제의 현재가 녹아들어 있습니다.
9등급 문제아부터 힘겨운 삶을 살아가는 아이들까지, 모두를 아우르며 땐뽀반을 이끌고 있는 이규호 선생님은 이 영화의 중심입니다. 아이들과 스스럼없이 지내며 댄스스포츠를 가르치고 부족한 운영비를 쪼개 간식과 저녁을 사 먹이며 아이들의 고민을 듣는 교사. 엄마가 입원해 저녁도 챙겨 먹기 힘든 혜영이에게 동생들과 먹으라며 빵을 건네는 장면은 이규호 선생님이 어떤 사람인지 단적으로 보여줍니다.
아르바이트에 가야하는 현빈이를 제외하고 다 같이 간 MT에서 댄스스포츠를 하며 삶이 바뀌었다는 아이들의 고백들은 이규호 교사가 이 힘든 일을 왜 그만두지 않는지 설명해 줍니다. 한 아이는 밥 먹듯이 하던 지각과 결석을 하지 않게 됐고, 어떤 아이는 춤을 출 때는 말로 설명할 수 없는 행복감을 느끼게 됐다고 말합니다. 단순한 춤을 추는 것이 아니라 아이들의 삶이 변화하고 있는 것이고, 이규호 교사는 거기서 삶의 의미를 찾고 있는 셈입니다. ‘승진하려고 선생하는 거 아니지 않냐’는 이규호 교사의 말은 진정성이 있기에 울림이 더욱 큽니다.
2. 교육이 해야 할 일
KBS스페셜로 방송된 이후 극장판 개봉, 드라마 버전의 탄생까지. ‘땐뽀걸즈’가 적지 않은 사람들에게 감동의 메시지를 전했습니다. 영국에 '빌리 엘리어트'가 있다면 거제에는 '땐뽀걸즈'가 있는 것입니다. 갑자기 찾아온 경제 불황 속에서 희망이 사라질 법도 하지만, 춤을 추며 새로운 꿈을 꾸는 아이들. 그들의 든든한 조력자이자 인생에 있어 무엇이 중요한 것이지 가르치는 선생님. 이 아이들이 졸업한 후에도 땐뽀반에서 희망을 찾기 위해 춤을 추는 아이들은 계속 있을 것입니다. 춤은, 예술은, 스포츠는 그렇게 우리 삶에서 윤활유가 되고 행복의 또 다른 이유가 되기도 합니다.
그렇게 ‘땐뽀걸즈’는 국영수에서 우수한 성적을 받는 것만이 행복의 척도라고 가르쳤던 우리 교육에 꼭 그렇지 만은 않다는 사실을 보여주었습니다. 댄스를 통해서 학교를 재밌게 다니는 아이들이 많다면 그것으로 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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