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우리는 지금도 싸우고 있습니다
최동훈, 김지운, 류승완.
한국 영화계에서 잘 나가는 영화감독 3인방입니다. 천만 관객이 선택한 영화를 두 편이나 만든 최동훈부터, ‘베테랑’으로 이른바 ‘천만클럽’에 가입한 류승완, '라스트 스탠드'를 연출해 할리우드에서도 그 재능을 인정받은 김지운까지. 그런데 이 세 명의 감독에게 공통점이 한 가지 있습니다. 세 명 모두 일제강점기를 배경으로 한 영화를 만들었다는 점입니다.
영화 ‘암살’(2015년)은 1930년대 초 임시정부로부터 친일파 암살 작전을 명령받은 독립군들의 이야기를 그렸습니다. 데뷔작 ‘범죄의 재구성’부터 ‘타짜’, ‘도둑들’에 이르기까지 웰 메이드 범죄 스릴러 장르로 흥행 불패 신화를 이어가던 최동훈에게 ‘암살’은 하나의 도전이었습니다. 한국 영화계에는 묘한 미신 같은 것이 몇 가지 있다고 합니다. 통계적으로 100% 들어맞는 건 아니지만, 업계 사람들에겐 어느 정도 확률적으로 그렇다고 받아들여지는 그런 것들이 있습니다. 대표적인 것이 일제 강점기를 배경으로 한 독립군 나오는 영화는 성공하기 힘들다는 속설입니다. 최동훈은 ‘암살’을 통해 이 속설이 얼마나 허황된 것인지 증명했습니다. 탄탄한 이야기와 연출력, 주연 배우들의 열연에 힘입어 1,200만 관객이 ‘암살’을 보기 위해 극장을 찾았습니다.
무엇보다 ‘암살’이 주목받은 것은 어쩌면 현실과 전혀 다른 결말 때문일 것입니다. 현실에서 하지 못한 민족 반역자들, 부역자들에 대한 처절한 응징은 관객들에게 엄청난 카타르시스로 돌아왔습니다. 그리고 실제로 저런 일이 벌어진다면 얼마나 좋을까, 현실을 돌아보는 계기가 됐습니다.
2. 암살, 밀정, 군함도, 박열에 대하여
‘암살’의 흥행을 이어받아 이듬해(2016년) 김지운 감독의 ‘밀정’이 개봉합니다. ‘밀정’은 호쾌한 액션을 앞세웠던 ‘암살’과 조금은 다른 길을 갑니다. 일단 내용부터가 1920년대 초 ‘의열단’이 실제로 벌였던 경성 폭탄 반입 사건을 기초로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액션 연출보다는 주인공들의 치밀한 심리 묘사에 좀 더 공을 들였습니다. 관객의 숨을 멈추게 하는 영화 속 심리전에서 송강호와 공유라는 당대 최고 배우들의 연기가 빛났습니다.
많은 장점들이 있지만 ‘밀정’의 가장 큰 힘은 역시 ‘실화’를 바탕으로 했다는 점입니다. 엄혹한 시대 목숨을 내놓고 치열하게 싸웠던 이들이 있었고, 그들 덕분에 현재의 대한민국이 존재할 수 있었다는 사실에 주목하고 있습니다.
영화 ‘암살’에서 주인공 안옥윤(전지현)은 이렇게 말합니다. "알려줘야지. 우리는 끝까지 싸우고 있다고……." 실제로도 그랬고, 영화 속 독립군들도 그랬습니다. 그들은 작전에 나가기 전 사진을 찍습니다. 나라의 독립을 위해 싸우는 와중에 마지막이 될지도 모를 사진을 남겼습니다.
그리고 2017년 여름, 류승완 감독의 ‘군함도’, 이준익 감독의 ‘박열’ 등 일제강점기를 배경으로 한 영화들이 또다시 관객과 만났습니다. 영화 '군함도'는 1945년 일제강점기 일본에서 돈을 벌 수 있다는 말에 속아 군함도에 온 조선인들의 이야기를 담았습니다. 조선인들을 강제 징용해 노동자로 착취했던 지옥섬 군함도에서 조선인들의 목숨을 건 탈출을 다루고 있습니다. 영화 '박열'은 1923년 관동대지진 이후 퍼뜨린 괴소문으로 무고한 조선인이 학살된 시점에 일본 정부에 맞서 싸운 조선 청년의 실화를 그리고 있습니다.
3.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
대한민국 독립 이후, 영화 ‘암살’ 속 내용과 달리 현실 속에서 친일파는 청산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우리 사회의 기득권으로 남았고, 대한민국의 수많은 폐단의 원인이 됐습니다. 뉴 라이트로 불리는 세력은 일제 강점기가 우리 사회 근대화의 힘이 됐다며 근대 역사를 날조하려고 했고,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법통을 무시하는 위헌적인 ‘건국절’을 주장했습니다. 그리고 박근혜 정권은 이러한 왜곡된 역사관이 담긴 국정교과서를 도입하려 했습니다. 비록 촛불 혁명과 함께 정권이 교체됐고, 역사교과서 국정화는 수포로 돌아갔지만 역사를 왜곡하려는 시도는 계속되고 있습니다.
영화를 통한 역사 전쟁도 여전히 진행 중입니다. 친일의 역사를 미화하고, 자신들의 과오를 덮기 위한 시도는 사라지지 않을 것입니다. 가장 대중적인 매체인 영화, 특히 국내 최고의 감독들이 우리 근대사의 중요성을 잊지 않고 끝없이 수준 높은 콘텐츠를 만들어 내는 것은 이런 면에서 무척 의미 있는 일입니다.
엄혹했던 시절. 일본 제국주의에 희생당한 수많은 사람들이 있었고, 그래도 굴하지 않고 독립을 위해 끝까지 싸웠던 사람들이 있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될 것 같습니다. 그리고 친일의 역사가 여전히 현재 진행 중이라는 사실도 함께.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가 없다”는 단순한 진리를 잊지 않고 실천하기 위해서라도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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