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아메리칸드림의 허구
지금 사회를 살고 있는 30~40대 이상 기성세대들이 배웠던 대표적인 선진국의 모델은 미국입니다. ‘아메리칸드림’이라는 말이 생겨날 정도로 미국은 어떤 이상향과 같았습니다. 경제적인 부분은 물론 정치, 사회, 문화, 군사 등 모든 분야에서 미국은 세계의 ‘중심국가’로서 위치를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마이클 무어 감독의 2007년 작 다큐멘터리 영화 ‘식코(Sicko)’는 과연 ‘선진국’의 의미가 무엇인지 다시 한번 생각해보게 만듭니다.
‘볼링 포 콜럼바인’, ‘화씨 9/11’등 미국 사회의 폐부를 날카롭게 찌르는 다큐멘터리 영화를 제작해 온 마이클 무어는 ‘식코’를 통해 미국 의료제도의 근본적인 문제점을 날카롭게 지적하고 있습니다.
영화에 등장하는 수많은 사례들은 과연 21세기 미국이라는 나라에서 벌어지는 일이 맞는지 두 눈을 의심케 합니다. 영화 초반부에 등장하는 일하다 손가락 두 개가 잘린 한 노동자 이야기부터 놀랍습니다. 그는 의료보험에 가입돼 있지 않기 때문에 손가락 접합 수술에 천문학적인 돈(하나 접합에 1만2,000달러, 두 개 접합은 6만 달러)을 내야 합니다.. 병원비 전체를 감당하지 못한 환자(sicko-병자라는 속어)는 손가락 하나만 접합 수술을 받고 하나는 포기할 수밖에 없습니다. 의료보험에 가입하지 않은 5,000만 명에 달하는 미국 시민들에게 이와 같은 일이 비일비재하게 벌어집니다. 살갗이 찢어져도 병원에 갈 엄두를 못 내고 스스로 봉합하거나, 감기에 걸려도 약만 사먹는 것은 특별한 일도 아닙니다. 부부가 동시에 아프게 되자 병원비를 대느라 집까지 다 처분하고 자식들의 집을 전전하는 한 노부부의 사연은 어쩌면 이들 모두의 어두운 미래입니다. 그렇다면 의료보험에 가입돼 있다고 의료혜택을 마음껏 누릴 수 있을까요? 마이클 무어는 아니라고 말합니다. 보험회사 심사 담당자들의 실적은 보험료를 청구하는 환자들의 요구를 얼마나 거부해 내느냐로 평가됩니다. 당연히 과거의 병력, 환자의 나이 등등 온갖 이유를 구실로 보험료 청구를 거부합니다. 20대에 암에 걸린 한 환자는 그 나이에는 암에 걸릴 확률이 낮다며 보험료 청구와 치료를 거부당합니다. 이미 암에 걸려있는 환자임에도 말입니다.
보험회사와 밀접하게 유착관계를 맺고 있는 병원도 여기서 자유롭지 못합니다. 보험에 가입된 환자라도 자기 병원과 계약을 맺은 보험회사에 가입된 환자가 아니라면 치료 자체를 거부합니다. 아기가 아파 응급 치료를 받기 위해 병원을 찾았다 치료를 거부당하고 다른 병원을 전전하다 아이를 잃게 된 사례는 보고도 믿기지 않습니다. 사람이 얼마나 아픈지 보다 어느 보험회사에 가입돼 있는지가 중요한 사회, 과연 진정한 선진국의 모습일까요? 제대로 된 치료를받기위해 신분을 속이고 캐나다로 밀입국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통해 마이클 무어는 이 물음에 간접적인 대답을 하고 있습니다.
2. 미국 사회에 대한 통렬한 풍자
마이클 무어는 프랑스, 캐나다 심지어 쿠바와의 비교를 통해 미국의 의료제도가 얼마나 낙후돼 있는지 보여주려고 합니다. 영화의 하이라이트는 마이클 무어가 돈이 없어 치료를 받지 못하는 사람들을 모아 쿠바로 향하는 장면입니다.
이 중에는 9.11 당시 영웅으로 불렸으나 후유증 치료를 받지 못한 소방관도 있고, 9.11 테러 당시 자원봉사를 한 이후 기침을 달고 사는 한 여성도 포함돼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이 수십년 적국으로 지냈던 쿠바에서 무상으로 양질의 치료를 받습니다. 미국 사회의 아이러니에 대한 통렬한 풍자입니다. 한국에서도 의료영리화 추진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계속해서 나오고 있습니다. 전국민 의료보험 가입과 의료보험 당연지정제라는 우수한 제도를 가지고 있는 한국이 왜, 무엇 때문에 미국의 ‘낙후된’ 제도를 따라가려 하는 것일까요?
3. 건강한 사회란?
보험회사, 제약회사, 의료기관의 이익, 돈벌이가 국민의 건강보다 우선시 되는 사회는 과연 건강한 사회일까요? 우리는 지난 2014년 선박회사의 이익, 구조회사의 이익을 국민의 목숨보다 우선시하다 어떠한 참담한 일이 벌어졌는지 목도했습니다. 그 외에도 크고 작은 많은 일들이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습니다. 이러한 일들이 두 번 다시 반복되지 않도록 하는 것은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마이클 무어의 영화 제목 ‘식코’(환자)는 미국 사회에서 제대로 치료받지 못하고 있는 수많은 미국 시민들을 가리키는 것이자 동시에 특정 세력의 이익을 대변하는 왜곡되고 열악한 의료제도와 사회보장제도, 나아가 이처럼 구멍이 숭숭 뚫린 사회안전망을 갖춘 채 유지되는 미국 사회 자체를 가리키는 것입니다.
이제 우리가 배우고 가르쳐야 할 선진국의 모습도 바뀌어야 합니다. 경제적 성장보다 더 국민의 생명과 건강, 인권과 공동체를 중요시하는 진짜 선진국의 모습을 함께 그려나가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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