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명량과 군도 이야기
지난 2014년 여름 성수기 영화 시장의 가장 큰 관심사는 변신 로봇(트랜스포머:사라진 시대)도 진화한 원숭이(혹성탈출:반격의 서막)도 아닌, 대한민국이 만든 사극 중 흥행 승자는 누가 되느냐는 것이었습니다. 그해 여름 블록버스터 전쟁에서 SF물이 아닌 국내 사극 영화끼리 대결을 벌이는 것도 오랜만에 보는 기이한 풍경이었습니다.
그해 여름 개봉한 사극들의 수준이나 무게감이 결코 만만하지 않은 것이 이러한 흥행 전쟁을 야기한 이유일 것입니다. 조선말 화적들의 이야기를 다룬 ‘군도, 민란의 시대’(감독 윤종빈), 이순신 장군의 명량대첩을 극화한 ‘명량’(감독 김한민), 국내에서는 최초로 시도되는 해양 판타지 액션 어드벤처 ‘해적’(감독 이석훈) 등 같은 사극 내에서도 다른 스타일과 장르를 내세워 관객들의 눈길과 발길을 끌었습니다.
여담으로 최종 관객 수는 명량 1,761만명, 군도 477만명, 해적 866만 명으로 그해 여름 영화 시장을 정말 뜨겁게 만들었습니다. 명량의 관객 수는 8년이 지난 현재까지도 깨지지 않는 한국영화 관객수 1위의 자리를 지키고 있습니다.
특히 ‘군도’와 ‘명량’은 실제 역사 속에 존재했던 인물과 사건, 이른바 실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졌다는 점에서 더욱 흥미롭습니다. 영화 ‘명량’은 두말하면 입만 아플 우리 민족의 영웅 이순신 장군에 대한 영화입니다. 역사책을 통해 배우면서도 믿기지 않는 12척 대 330척의 대결과 기적적인 승리. 모두 아는 역사적 사실이지만 최민식이 연기할 이순신의 고뇌와 결단은 어떤 모습일지, 당시 해전을 어떤 방식의 스펙터클로 재현해 낼지 많은 궁금증을 자아냈습니다. 무엇보다 ‘최종병기 활’을 통해 조선 시대의 전쟁 장면과 액션신을 다루는 데 엄청난 소질이 있음을 증명했던 김한민 감독이 메가폰을 잡았기 때문에 더욱 많은 기대를 받았습니다.
김한민 감독은 이순신 3부작을 연출하겠다는 뜻을 이미 밝혔으며, 두 번째 영화 ‘한산:용의 출현’이 2022년 7월 개봉합니다. ‘한산:용의 출현’은 명량해전 5년전, 왜군을 상대로 조선을 지키기 위해 싸운 이순신 장군과 조선 수군의 ‘한산해전’을 그린 작품입니다. 마지막 작품 ‘노량:죽음의 바다’는 2023년 개봉할 예정이라고 합니다.
명량은 개봉하자마자 엄청난 흥행 돌풍을 일으키며 개봉 2일만에 100만 관객을 달성했으며, 손익 분기점이었던 600만을 가볍게 넘겼습니다. 역대 최단기간 1,000만 관객 돌파라는 기록을 세웠으며, 한국 개봉 영화 통산 12번째 천만 영화가 되었습니다. 최종적으로는 한국 개봉 영화 사상 최대 흥행작이 되었습니다.
‘군도, 민란의 시대’는 ‘범죄와의 전쟁 : 나쁜 놈들의 전성시대’의 주역들, 윤종빈 감독과 하정우가 다시 한번 손을 잡았다는 사실 만으로 화제가 됐습니다. 더구나 하정우 최초의 사극 출연작이자 악역으로 강동원이 등장한다는 소식, 조선시대 말 화적들과 탐관오리들의 대결을 한바탕 경쾌한 서부극 형식으로 그려낸다는 점 등이 영화 흥행에 ‘그린라이트’로 평가받았으나 최종 평가는 조금 아쉬웠습니다. ‘군도’는 지리산에 실제로 존재했던 화적단 ‘추설’과 나주지역의 탐관오리들을 등에 업고 땅귀신으로 불릴 정도로 백성들을 착취한 나주의 대부호 조윤과의 대결을 그려냈습니다. 강동원의 악역 연기만으로도 많은 관객들을 불러 모았으며, 주조연들의 맛깔나는 연기 덕에 많은 호평을 받았습니다.
2. 영화가 우리에게 주는 메시지
이처럼 단순한 흥행 요소들 만으로 이 영화들을 평가하기엔 뭔가 부족할 수 있습니다. 실화를 배경으로 하고 있는 영화의 힘은 영화가 품고 있는 역사성이 현재의 역사와는 어떤 연관성이 있는가에 따라 달라지기 때문입니다. 이런 점에서 ‘명량’과 ‘군도’가 개봉했던 2014년은 의도치 않았으나 매우 시의적절했습니다. 그래서 더 관객이 몰렸는지 모를 일입니다. 1592년 조선을 침략했으나 이순신의 활약 등으로 그 뜻을 이루지 못했던 일본은 318년 후인 1910년 대한제국 강제 병합을 통해 수백 년간 품고 있던 야욕을 이뤄냅니다. 태평양전쟁에서 연합군에 패하고 1945년 한반도에서 물러나지만, 그들의 대륙에 대한 욕심은 여전히 끝이 없습니다. 당시 아베 내각은 각종 망언과 망동을 통해 과거 자신들의 잘못을 부정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자위대 파병이 가능하도록 제도를 고치는 등 군사적인 움직임을 강하게 보였습니다. 일본은 궁극적으로 평화헌법을 개정함으로써 공식적으로 군사행동(전쟁을 포함해서)이 가능하도록 하는 것이 목적인 것으로 해석될 수 있습니다. 일본뿐만 아니라 한반도를 중심으로 중국과 미국, 러시아 등도 동북아시아에서 패권을 쥐기 위해 긴밀하게 움직이고 있는 것입니다. 일본의 망언 덕분에 우리 영화에 국민적 관심이 더 끌렸을지도 모를 일입니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습니다. 실화를 바탕으로 하는 영화는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가 어떤 준비를 하고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에 대한 묵직한 메시지를 던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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